2009/01/23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용산

경찰과 전대련따위에 대해서에서는 논의하지 않겠다.
시공사와 마찰을 일으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철거민의 대표인양 투쟁을 외치는 전철연이나정권의 개를 표방하며 나선 경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검찰은
나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한창 까고있는 중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진 사회의 저 밑바닥에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철거민 5명 경찰이1명의 죽음.
경찰이 죽였다고들 하지만 죽이기 위해서 진행된 진압작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위대 또한 죽음을 각오하고 시위를 한것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이익이전에 자신의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이익과 타인의 생명이 연관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아니라 세계공통 일것이다.

이익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때로는 지갑속의 몇십만원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약자라도 자신보다 상대적 약자를 만나면 힘으로 누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은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 생존할수있는 인간이라는 한 종(種)이 가진 본성의 일부이다.
그 본성을 사회화 과정에서 배려나 양보등의 타협으로 풀어나갈수 있도록 재창조하는것이다.

자유민주주의 논리는 누구나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수있고 그권리를 행사할수 있으나 타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면 제제를 받는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는 다르다 모든것은 돈으로 환원되며 돈이상의 값어치를 가진것은 없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자본주의국가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경제운용 방식이지 국가 운용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자본주의'라는 공식이 성립되는듯하다.
돈이 모든 가치기준을 대표하며 자본의 논리에 반박하면 공산주의나 좌파로 치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립되는 것이면 ‘악’이라는 인식이 사회전체에 심어져 있어 '돈'이 최우선인 사회를 만든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따라 우리사회에서 정당성에 기반을 한 권력 즉, 한국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돈 이있으면 자신의 정당함을 얻기위해 자기 주장을 하고 그 주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할필요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이 그 사람의 능력이고 인품이 돼어버린 것이다.

값비싼 스포츠카, 명품, 좋은집 가치기준과 인생의 목표가 모두 돈으로 일관 되어있는 사회에서 '생명'이 소중하니 '행복'어쩌니 하다가도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면 입닫고 돈의 손을 드는 사회에서 이번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은 더큰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길목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된데에는 구성원 전체의 자본에의한 통치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명박씨가 당선된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번용산 참사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고 돈을 쫓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돈을 위한 논리가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돈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구성원은 도태되고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게 되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라고 치부해 버리며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사회전체의 개인주의가 바탕에 있었기에 생겨날 수있었을 것일다.


그러나 2008년 들어서 촛불을 기점으로 이명박씨가 추진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에 자신의 목이 졸려오는 것을 느낀 국민들은 정권이나 공권력에 대하여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껏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껏 있어왔던 것이 관심을 가지고 보니까 보이는 것이다.


"나하나 잘먹고 잘살면 땡"이라는 식의 사고가 가져올 앞으로의 변화는 결코 약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잘 살수있는 바탕을 만드는데 함께 노력을 해야 나도 잘 살수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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